글로벌 반도체 기업

TSMC 연혁

세미케미 2024. 4. 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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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가 설립되기 전에 모리스 창은 반도체 대기업들에 TSMC의 위탁 생산 모델 투자 관련 편지를 보냈지만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투자를 꺼려했습니다.

TSMC가 설립되고 2년 뒤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소규모 기업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큰 공장을 지을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TSMC는 이 기업들을 대신해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함께 성장했습니다. 생산 공장 없이 설계만을 해왔던 기업들은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자일링스 등)

 

TSMC는 반도체 설계도 기밀 유지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설계도를 파운드리 공장에 보내 생산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유출될까봐 많은 기업들이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모리스 창은 착실하게 기밀 유지에 힘써 믿음을 심어줬습니다.

직원들은 근무시간에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폰과 메모리 장치를 가지고 있을 수 없었고 서류를 개인 메일로 보내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만약 카메라 달린 휴대폰을 소지해서 4회 적발 시에 모리스 창에게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심지어는 화장실도 카드를 찍고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TSMC의 연혁

1987

TSMC 설립

 

1993

대만 최초의 8인치 웨이퍼 팹 개발

 

1999

시가총액 1조 대만달러 돌파

 

2003

0.13 ㎛ 공정 가동

 

2007

반도체 기업 중 세계 5위 매출 돌파

 

2010

세계 3대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

 

2014

애플의 A10, A11 칩 독점 공급

 

2017

3㎚ 생산 공장 건설계획 발표

시가총액 6조 대만달러 돌파

연간 매출 1조 대만달러 돌파

 

 

삼성과의 경쟁

2014년에 아이폰6에 TSMC가 생산한 A8 프로세서가 처음으로 들어갔습니다. 2011년부터 100명 내외의 엔지니어 팀이 뭉쳐 애플에 공급할 20나노 공정에 온 힘을 쏟았기에 가능한 성과였습니다. 바로 20 나노 공정을 세계 최초로 성공한 사례였습니다.

2012년 애플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들 또한 판매량이 급격히 올라갔습니다. TSMC는 이미 스마트폰 프로세서 파운드리 업체로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의 발주는 없었습니다. 애플은 삼성에게 생산을 모두 맡겼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삼성이 아닌 다른 곳에 맡기고 싶었던 애플은 TSMC와 함께 작업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TSMC의 많은 노력으로 삼성과 벌어질 수 있는 특허권 분쟁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한편 기존 고객의 수요를 포함해서 애플의 수요까지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생산 능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그해 매출 절반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을 투입할 정도로 빠르게 생산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추가적으로 그 당시 첨단 기술인 20 나노 공정 제품을 양산하는 최초의 파운드리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2013년에도 애플 프로세서를 납품하기 위해 큰 자본을 들여 제품을 개발했고 마침내 애플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투입한 이유는 무엇보다 경쟁자인 삼성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삼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자 외국 자본들이 TSMC 주식을 사들이고 대만에서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하게 됩니다.

이후 애플의 A 시리즈 칩 위탁 생산 외에도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시스템 반도체를 더 발전된 기술인 7나노 제조공정으로 생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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